판소리 연행의 유창성에 대한 인지적 관심
류수열
서울대 강사
국어교육학연구 11집 159-188 (2000)
초록
이 연구는 판소리 창자가 긴 사설을 대본 없이 연행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인지적 방법으로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판소리 창자는 서사적 맥락을 기억하면서 암기된 세부적인 사설을 쉼없이 연행한다. 이를 본고에서는 '유창성'이라 보고 그 유창성을 가능하게 하는 인지적 조건을 '도식'과 '원형' 개념에 의거하여 해명하였다. 판소리 사설에 나타난 도식은 그 세부 목록들의 상호 관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첫째는 세부 목록들이 시간적·공간적으로 인접해 있는 경우로, 이를 근접성의 원리에 따른 배열이라 하였다. 방향 도식, 계절 도식, 지리 도식 등이 활용된 사설은 근접성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은 세부 목록들이 의미론적 유사성을 지니며 연결되어 있는 경우로, 이를 유사성의 원리에 따른 배열이라 하였다. 그림 도식, 화초 도식 등이 활용된 사설은 유사성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와 문자의 순서에 따라 세부 목록들이 연결된 사설은 연속성의 원리에 따른 배열이라 보았다. 판소리 창자들은 이미 관습적으로 정해져 있는 도식을 활용하거나 언중들에게 매우 익숙한 언어 구성체를 원형으로 활용하여 사설을 구성하고 이를 재생해 낸 것으로 보인다. 이들 도식과 원형은 판소리 창자들로 하여금 기억과 암기 부담을 줄여 경제성과 효율성을 높여 주었으며, 재생할 때에는 유창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도식과 원형을 활용하여 표현의 유창성을 발휘하는 판소리 연행은, 일상적인 화자들의 말하기 활동에서 사고의 유창성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